2006년 05월 21일
오래전 그책 -김한길- 눈뜨면 없어라.

어딘가에서 일부를 읽고,
꼭 제대로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던 수필집을
게으른 탓에 오늘 읽어보았다.
그때서야, 그에게 품었던 내 기대는 충족되었다.
간결한 문장과 사람 냄새나는 모습 그리고 감성적인 표현들.
무릇 수필집을 읽게되면 그렇듯이,
그는 내게 수 많은 느낌표와 물음표들을 던져주었다.
78. 답장
예쁘고 감찍한 계집아이들아.
축제 때 찍은 사진 잘 받아보았다. [LOVE] 라는 글자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걸 보았다. 스스로는 불태우지 못하고 기껏 기름 묻힌 장작이나 태우면서 그 곁에서 덩달아 소리치고 있는 너희들의 상기된 얼굴들을 보았다.
그렇게도 단순하고 여린너희들, 해답없는 번민과 식어지지 않는 열정을 감추고 그렇게 마냥 까르르대기만 하던 너희들.
그래, 때떄로 과거에 사로잡히게 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야.
이유는 간단해, 지나간 일들만이 유일하게 진실하니까. 미래에는 꿈과 우연과 망설임과 그런 것들이 섞여 있어. 순수하지가 않아.
145. 어른
..... 아까 갓난 아기가 우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그저 웃기만 했었다. 갓난아기가 우는 것은 걱정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어른이 울면 걱정이 된다.
왜냐하면, 어른이란 울음을 참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인 까닭이다.
편집자 주.
결혼생활 5년 동안,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은 그 절반쯤이었을 것이다. 그 절반의 절반 이상의 밤을 나나 그녀 가운데 하나 혹은 둘 다 밤을 새워 일하거나 공부해야 했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모든 기쁨과 쾌락을 일단 유보해 두고, 그것들은 나중에 더 크게 왕창 한꺼번에 누리기로 하고, 우리는 주말여행이나 영화구경이나 댄스파티나 쇼핑이나 피크닉을 극도로 절제했다.
그 즈음의 그녀가 간혹 내게 말했었다.
"당신은 마치 행복해질까 봐 겁내는 사람 같아요."
그녀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다섯 살 때였나봐요.
어느 날 동네에서 놀고 있는데 피아노를 실은 트럭이 와서 우리집 앞에 서는 거예요. 난 지금도 그때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 아빠가 바로 그 시절을 놓치고 몇 년 뒤에 피아노 백 대를 사줬다고 해도 내게 그런 감격을 느끼게 만들지는 못했을 거예요"
서울의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내게 이런 편지를 보내시곤 했다.
"한길아, 어떤 때의 시련은 큰 그릇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시련이란 보통의 그릇을 찌그러뜨려 놓기가 일쑤란다"
anyway, 미국생활 5년만에 그녀는 변호사가 되었고 나는 신문사의 지사장이 되었다. 현재의 교포사회에서는 젊은 부부의 성공사례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방 하나짜리 셋집에서 벗어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3층짜리 새 집을 지어 이사한 한 달 뒤에, 그녀와 나는 결혼생활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혼에 성공했다.
그때 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버린 대가로.
# by | 2006/05/21 01:59 | 재미난 책읽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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