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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자서전

어른이 되어가는것

토요일 아침, 6시간도 체 못 자서 일어 났다.
놀고 싶어서, 자는 시간이 아까워서..
어제도 새벽 4시까지 놀았던거 같다.
ㅋㅋㅋ 아침에 눈을떠 좋아하는 게임을 하다가,
동치미에 냉면을 만들어 먹고는
감자와 고구마를 찜기에 올렸다.
근데 게임하느라 물이 다 쫄고 냄비가 타들어가는줄 모르고 ㅡ.ㅜ 결국 냄비 태워먹었다.
집으로부터 엄마가 보내온 택배가 도착했다.
토마토 7개 마 5개..
어라 근데 신문에 쌓인 마의 중간부분이 마치 쥐가 파먹은것마냥 쓸려있었다. 뭐지 이건 - _-;;
박스가 멀쩡한데 쥐가 들어왓을리도 없고. 찜찜.. 그래도 어머니가 보내주신거니 맛있게 먹어야지..
그리고 또 보니 장조림 한통... 살찐다고 기름지지 않은 부위로만 특별히 만든.. 맛나겠다.. ㅋㅋ
그리고 또.. 고등어조림.. ㅋ 내가 좋아하는대로 만들어서 얼려가지고 보내주셨다능.. ㅎㅎ
그러구 감자 몇알.. 감자와 고구마는 얼마전에 사놓은게 있었는데 ㅎㅎ
그래두 고향땅에서 보내온 감자는 더 맛있으려나 ㅎㅎㅎ
여름이라며 붙여준 차렵이불세트와..
고향 방에 있던 내 메모리폼 베게 ㅋㅋ
모두 햇볕에 까실까실하게 말려져서 보내져 왔다. ㅎㅎ 색상도 이뿌다 ㅎㅎ
붙여진 물건들을 다 정리한 다음,
대청소를 시작했다.
편의상 집 창가에 널어두었던 건조대를 베란다로 놓고, 빨래를 널고,
침대위를 진동 팍팍! 청소기로 갈아끼운다음 침대를 팡! 팡! 털면서 진드기를 잡고
어머니가 붙여주신 새 이불 세트를 깔고.. 베게 호청과 배게도 분리해서
모두다 나의 트롬 세탁기 안으로 ㄱㄱ 씽~~ 어라
이불은 나눠서 세탁해야겠다 싶어, 이불만 빼고 메트와 베게 등을 넣고 먼저 한벙 슝 슝!
그러는 사이 스팀 청소기로 방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설거지도 깨끗하게 하고..
어머니가 붙여주신 과일과 마를 개끗이 씻어 냉장고로 ㄱㄱ씽 ㅋㅋ
휴..
설거지 하면서 문득 든 생각..
내가 먹은걸 치우는데도 이렇게 힘들고
특히 그 씽크대 망을 비울때마다
손에 느껴지는 그 미끈미끈하면서 끈쩍한 음식물 찌꺼기의 느낌.. ㅡ.ㅜ]
정말 안좋은데, 어머니는 어떻게 다 하셨을까.. 그 긴 세월을.. ㅎㅎ
고무장갑 사야겠다 - _-
여이제 책상위에 놓여진 토마토와 감자 두알 고구마 두알.. ㅋㅋ
이렇게 글을 쓰고 좀 돌려놓은 빨래를 널어놓고
회사 헬스장에가서 수영과 헬스를 하다가
영화와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올 예정.. ㅎㅎ
    

2시간동안 청소를 했다.

by 행복하자 | 2009/05/30 14:35 | 나의 하루 | 트랙백 | 덧글(0)

담배,오뎅 그리고 폭풍우

폭풍우가 치던 날 이었다.
하루중 어느때인지 가늠 할 수 없는. '시간'이란 단어가 사라져버린 세상이 찾아왔다.
조그마한 어촌 마을에는 태풍 주의보가 내려져 있었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내리는
버스 종점에는 거친 숨을 내뿜던 기계들이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었다.

그때 내 손엔 아버지의 담배값이 들려져 있었고,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던 것 같다.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웠던 담배가게는 버스 종점 어귀 어디엔가에 있는 조그마한 구멍가게,
지친 몸과 거칠은 손을 가진 사람들이 뜨거운 난로 주전자의 김을 쐬며,
얼은 몸과 그날의 근심들을 조금이나마 날려보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나 또한 비슷한 맘으로 그 곳을 찾았고, 아버지의 담배를 사고남은 돈으로
무엇인가를 하려 할때, 내 눈에 보인건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큰 냄비에 사이 좋게 들어있던 '오뎅' 이었다.

"아줌마 저 오뎅 얼마에요? 저거 하나 먹을께요."
그러구선 먹기 시작한 오뎅..
살금 살금 아껴먹던 와중 옆에 있던 기사아저씨 한분이
성큼 성큼 오뎅을 먹었다.
몇번 먹다 질렸는지 어딘가에 양념처럼 찍어먹었는데,
그러구선 내가 이해 할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이내
만족한듯이 다시 찍어 먹곤 했다.
그 아저씨가 남은 오뎅조각을 털어놓고 문을 나서려 할때,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주인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아줌마 저거 찍어먹는거 뭐에요?"
그때의 그 아주머니는 따분하고 지루해하다. 이거 재밌겠다 싶은
표정과 느낌으로 나에게 말했다.
"거기다가 오뎅 찍어 먹어봐 맛있어!"
음.. 지금도 누군가가 나에게 "무엇 무엇이 그렇다" 라고 말하면
곧잘 믿어버리듯이, 그때도 그랬다.
아.. 그렇구나 찍어 먹으면 맛있는 건가보다.. 하고..
오뎅에다가 그 무엇인가를 [듬뿍]찍었던거 같다.
아까워서 아겨먹던 그 오뎅을 말이다.
그래, 결국 난 오뎅에다 '그것'을 듬뿍 찍었고
입에 털어넣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이게 무슨 맛이야!!!
콧구멍과. 얼굴 전체의 구멍과 구멍이란곳에서는
뜨겁고 매운 김이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죽을 쌍을한 내 얼굴을 보고 안되어 보였는지
그 아주머니는 한마디 하였다. " 그거 겨자야..."
그때 내 뇌리에 박혔던 3글자가 있었다 "연겨자"
그 이후로 난 겨자라면 조심스럽게 되었고,
냉면을 먹을때나 어디에서건 겨자를 볼때면 그때를 떠 올리며
그때의 오뎅조각을 아껴먹던 내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구선.. 이미 내 기억은 오랜 시간을 지나쳐 왔구나... 하고



by 행복하자 | 2009/05/25 00:15 | 나의 하루 | 트랙백 | 덧글(0)

지난 하루 " Rainny Days "

이씨 여기와서 이것좀 거들어요. 그래 내 이름이 '이씨'구나 어렸을적 꽤나 비싼값으로 지어졌던 내 이름, 2살 터울인 형과 항렬까지 맞췄던 이름은 땀방울과 함께 흘러가버리고, 이제 남은 것은 녹아버린 이름만큼 무거운 얇은 민소매 티셔츠 하나뿐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해가 뜨기도전에 공사장 한켠에서 먹은 라면 한 그룻이 몇배나 불은 느낌이다. 이씨 뭐하는거야 오늘안에 일 다 끝내야지. 끝나는 데로 바로 퇴근 시켜드리리다. 빨리 마무리 지으슈. 또 거짓 말이군. 보나마나 눈코뜰새없이 죽도록해야 겨우 저녁 늦게나마 분량을 다 끝낼수 있을터엿다 언젠가 저 말을 굳게믿고 원초적인 욕구를 해소할 시간을 제외하고 어두컴컴한 아파트 지하에서 하루종일 일한 적이 있었다. 수평과 수직을 나타내는 물방울이 보이는 자와 두꺼운 소방용 파이프를 용접하면서 말이다. 그 언제가 일을 곧잘한다며 파견근무라는걸 나간 날이었다. 허름한 병원 영안실에서 일을 했었는데, 당시의 사수는 절단기를 영안실에 설치 할 수 없다는 하찮은 이유로 오직 그만이 포르말린 악취가 가득찬 그곳을 오가며 시체의 향기를 전하게 되었다. 얼만큼 시간이 지났을까 공사판 인부들의 기름진 배에 밀가루 반죽과 쓰디쓴 술을 더 할 시간이 되었다. 아직도 밖은 추적추적 비가내리고 있었고, 포장되지 않은 흙길은 통고무인 안전화 틈새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이씨의 발을 무겁게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공사장 한켠에 세워진 간이화장실이 보인다. 언젠가 배설의 욕구를 해결하려 찾았던 그 화장실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와함께 깨어진 플라스틱 틈새 사이로 꾸역꾸역 흘러나오고 있었다.

by 행복하자 | 2009/03/23 10:04 | 나의 하루 | 트랙백 | 덧글(0)

Express Bus Terminal And Suncream

Express Bus Terminal And Suncream (1) - 2006.06.18 20:18

사람이 붐비는 고속버스 터미널.

고향과는 참 멀리 떨어진곳까지 왔다.

함께 앉았던 둘은 이별할때의 가슴시린 모습으로

뜨거운 버스에서 내렸다.

 

터미널 한켠에 자리잡은 국밥집에 앉은 뒤에

무슨 말이 오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단지 그때의 잔상과 느낌만이 남았을 뿐.

 

그 다음, 여자는 남자에게 썬크림을 꺼내며 바르라고 했다.

남자의 슬픈 얼굴이 가려지길 바란 것 같다.

둘은 각각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을 찾아 들어갔다.

남자는 곧장 세수를 했다. 

꿈같은 이 시간들이 씻겨져 나가길 바라며 얇은 셔츠를 입었음에도

셔츠가 흠뻑 젖도록 세수를 했다.

 

얼굴의 물기가 체 마르기도전에 스킨을 바르고

여자에게서 건네받은 썬크림을 덕지덕지 발랐다.

썬크림을 바르고 만난 둘.

 

여자는 남자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보며,

"썬크림 좀 잘 바르고 다녀 이게 뭐야?"라며 슬픈 눈으로 말했다. 

그러보니 남자의 얼굴은 썬크림이 한데 뭉쳐 퍽이나 보기 싫은

몰골이다. ... 그때의 그 시간도 그랬을까?

 

여자는 남자 얼굴을 아니, 썬크림만을 식은 손길로 만져주며,

짐짓 따뜻한 척 하려 애쓴다. 싸늘히 죽은 손으로 말이다.



Express Bus Terminal And Suncream (2) - 2009.02.20 21:40

이별을 서두르기위해 여행을 떠난 여자와,

마지막까지 그녀를 붙잡고 싶어, 따라나섰던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둘은. 처음 사랑할때 필요했던 운명처럼, 이별여행을 함께하고 있었다.

긴 시간을 달려 도착한 그곳에는, 그녀의 오랜 친구가 살고 있었고,

그녀의 친구는 예기치않던 그의 등장에 몹시도 당황스러워 했다.


"그랬겠지. 절친의 남자친구를 따뜻하게 맞아줘야 했을까, "

"아님 '전' 남자친구였으므로 차갑게 대해야 했을까.."

 

이렇게. 이별여행의 가이드, 그리고 두 주인공은 함께 하게 되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뜨거운 아지랑이 같이 보이는 그녀의 뒷모습이

차가운 땀방울사이로 흘러내려 조금씩 그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 그녀가 매일 밤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그 긴 시간들.

그럴때마다 그럴 수 없음을 알려야 했던 자신의 모습들.

헤어지는 이별의 순간에서 그의 맘을 가장 아프게 했던 일은,

자신을 위해 모든 걸 버린 그녀 앞에서,

그는 단 한번도 그녀를 위해 모든것을 버린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읽었던 누군가의 자서전에서...

"당신은 행복을 두려워하는 사람 같아요"라는 말처럼

난 그녀와의 행복한 추억을 두려워했다. 자신만의 새장에서 벗어나길 두려워하는

길들여진 무엇처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그때의 행복들을 미뤄둔 댓가로

지금의 슬픔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언젠가, 떠나가는 행복을 잡으려는 그 부름에 응답해서

미친 척 그녀를 만나러 갔던 일. 그녀의 곁에서 잠들었던 시간..

그 시간이 그의 삶에서 가장 달콤한 시간이었음을..


가이드가 안내한 곳은 높게 분수가 솟아오르는 저녁의 공원이었다.

공원 산책로를 따라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고, 그의 앞에 그녀와 그녀의 친구가 걷고 있었다.

그때.. 그녀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까?

그녀들의 지난 추억을 회상하며 지금의 슬픔을 공유하고자 했을까?

아님, 그를 잊고 그녀들만의 미래를 이야기 하고 있었을까?

 

얼만큼 걸었을까 그들은 함께 멈춰섰고 가까운 곳에서 시원한 맥주를 샀다.

맥주를 마시고 나면 이 갈증이 해소될까..

....................

............................................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그녀의 가이드역활을 해주었던 친구의 집으로 향했고

그는, 쉴곳을 찾아, 홀로 모텔방을 향했다.

 

그날 밤이었다.

by 행복하자 | 2009/02/21 11:23 | 루씬(검색엔진) | 트랙백 | 덧글(0)

오래전 그책 -김한길- 눈뜨면 없어라.


어딘가에서 일부를 읽고,
꼭 제대로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던 수필집을
게으른 탓에 오늘 읽어보았다.
그때서야, 그에게 품었던 내 기대는 충족되었다.
간결한 문장과 사람 냄새나는 모습 그리고 감성적인 표현들.
무릇 수필집을 읽게되면 그렇듯이,
그는 내게 수 많은 느낌표와 물음표들을 던져주었다.


78. 답장

예쁘고 감찍한 계집아이들아.
축제 때 찍은 사진 잘 받아보았다. [LOVE] 라는 글자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걸 보았다. 스스로는 불태우지 못하고 기껏 기름 묻힌 장작이나 태우면서 그 곁에서 덩달아 소리치고 있는 너희들의 상기된 얼굴들을 보았다.
그렇게도 단순하고 여린너희들, 해답없는 번민과 식어지지 않는 열정을 감추고 그렇게 마냥 까르르대기만 하던 너희들.
그래, 때떄로 과거에 사로잡히게 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야.
이유는 간단해, 지나간 일들만이 유일하게 진실하니까. 미래에는 꿈과 우연과 망설임과 그런 것들이 섞여 있어. 순수하지가 않아.


145. 어른

..... 아까 갓난 아기가 우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그저 웃기만 했었다. 갓난아기가 우는 것은 걱정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어른이 울면 걱정이 된다.
왜냐하면, 어른이란 울음을 참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인 까닭이다.



편집자 주.

결혼생활 5년 동안,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은 그 절반쯤이었을 것이다. 그 절반의 절반 이상의 밤을 나나 그녀 가운데 하나 혹은 둘 다 밤을 새워 일하거나 공부해야 했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모든 기쁨과 쾌락을 일단 유보해 두고, 그것들은 나중에 더 크게 왕창 한꺼번에 누리기로 하고, 우리는 주말여행이나 영화구경이나 댄스파티나 쇼핑이나 피크닉을 극도로 절제했다.

그 즈음의 그녀가 간혹 내게 말했었다.
"당신은 마치 행복해질까 봐 겁내는 사람 같아요."
그녀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다섯 살 때였나봐요.
어느 날 동네에서 놀고 있는데 피아노를 실은 트럭이 와서 우리집 앞에 서는 거예요. 난 지금도 그때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 아빠가 바로 그 시절을 놓치고 몇 년 뒤에 피아노 백 대를 사줬다고 해도 내게 그런 감격을 느끼게 만들지는 못했을 거예요"

서울의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내게 이런 편지를 보내시곤 했다.
"한길아, 어떤 때의 시련은 큰 그릇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시련이란 보통의 그릇을 찌그러뜨려 놓기가 일쑤란다"

anyway, 미국생활 5년만에 그녀는 변호사가 되었고 나는 신문사의 지사장이 되었다. 현재의 교포사회에서는 젊은 부부의 성공사례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방 하나짜리 셋집에서 벗어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3층짜리 새 집을 지어 이사한 한 달 뒤에, 그녀와 나는 결혼생활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혼에 성공했다.
그때 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버린 대가로.

by 행복하자 | 2006/05/21 01:59 | 재미난 책읽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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